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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꼬를 쫓아가다가 만난 안달루시아  - 이은호 / 아람클래식기타 (02) 745-6117

플라멩꼬(Flamenco).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 여러 도시에 꼬깃꼬깃 숨겨져 있는, 거길 가야만 제대로 된 그것을 만나볼 수 있는 그들만의 예술이다. 

한 두번 그런 것이 아니라서 이제는 플라멩꼬에 반해 떠난 아내와 떨어져 있는 것이 점점 수월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둘째 딸 예솔이도 함께 플라멩꼬 무용에 빠뜨려보겠다고 데리고 떠났다.  내친 김에 가족여행도 할 겸, 집에 남아 있는 첫째 딸 예원이를 데리고 스페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래, 온 가족이 안달루시아를 한바퀴 돌고 오는겨...

유럽 구석탱이에 있는 스페인하고도 이베리아 반도 남서쪽 끝에 위치한 세비야(Sevilla)는 '플라멩꼬의 메카'라 불릴만큼 세계 각지에서 플라멩꼬를 배우려고 많은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고, 아내와 둘째 아이도 어김없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세비야의 중심부인 산타 끄루스(Santa Cruz) 옆으로 길게 뻗은 메넨데스(Menedez) 길 건너 가이나또(Gallinato)라는 작고 아담한 골목의 3층 단독집을 빌렸는데, 월세가 우리 돈 40만원 정도로 외지생활치고는 큰 부담이 없었다.  사진에 있는 꼬마 아이가 바로 둘째 예솔인데, 학교도 결석하고 스페인에 있는 동안 세비야에서 내놓으라는 선생님들은 모두 다 찾아다니며 무용을 배웠다.  그녀가 마누엘 베딴소스(Manuel Betanzos) 무용아카데미 앞에서 한 폼 잡고 있다.  쇼핑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레이나 데 꼼쁘라(Reina de Compra 쇼핑의 여왕)'란 별명을 엄마가 지어 주었단다.  그도 그럴 것이 피곤해서 곯아 떨어진 아이를 "수퍼마? 가쟈~!!"란 말로 일으켜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

예전에는 스페인의 가는 도시마다 플라멩꼬를 어디서 볼 수 있는지 알아보고는 밤이 되기만을 기다려 플라멩꼬 공연장만 찾아다녔는데, 이제는 플라멩꼬 공연보다는 가는 곳마다 현지 사람들, 재래시장, 문화유적지를 파고드는 그야말로 여행의 고수가 되어가고 있다.   플라멩꼬를 쫓아가다가 만난 스페인 안달루시아.  플라멩꼬만 알아서도 안되고 안달루시아만 알아서도 안된다.   둘은 하나다.

그리고 여지껏까지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초고속열차인 아베(AVE)도 타봤고, 밤새도록 가는 침대열차도 타봤고, 정말 싸고 편리한 도시간 고속버스도 타봤기 땀시, 이번엔 과감하게 렌터카를 이용해 보았다.   결과적으로는 이번 여행에서 렌터카를 이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으며, 믿어지지 않을만큼 저렴하고 쾌적하고 편리한 것이었다. 

떠나기 전에 AVIS 렌터카 인터넷회원으로 가입하고 VOLVO사의 5인승 TURON이란 차를 일주일 예약해서 빌렸는데, 귀국해서 카드명세서를 보니 겨우 30만원 정도(하루 4만원, 1인 하루 교통비 1만원꼴)였고, 안달루시아 고속도로는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를 만나는 것 이외에는 정말 한산했으며, 고속도로비는 3,000킬로미터 가까이 주행하는 중에 전부 합해 1만원 정도 냈을까 기억도 나지않을 만큼 거의 무료였다.  주차도 시내 한복판만 빼면 거의 무단주차가 정례화 되었을 정도였으니 여행이 얼마나 편하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어라?  이 노오란 들판은 무엇인고???   자세히 보시라.  해바라기 아닌가.
스페인어로 '마리솔(Marisol)'이라고 하는 해바라기의 씨는 스페인 사람들의 심심풀이 땅콩.
길거리에 먹고 버린 해바라기씨 껍데기가 개미떼 지나가는 것처럼 널려 있다.

깜짝이야~!! 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가끔 나타나는 판자떼기 투우의 형상을 보는 것도 정말 즐겁다.

판자떼기 투우는 한결같이 모두 숫놈이라서 거시기한 부분이 나무에 살짝 가려져서 다행이다.  적나라하게 보고 싶으면 직접 스페인을 찾아 가던가 '비가스 루나(Bigas Luna)'감독의 '하몽하몽(Jamon Jamon)'라는 영화를 보면 된다.  어쨌든 스페인답다.  정말 스페인이니까 이런 걸 볼 수 있는거다. ㅋㅋ 

스페인 안달루시아 여행이 뭐가 좋은지 말해보라면 나는 어김없이 세가지를 꼽는다.  후한 인심, 화창한 날씨, 싸고 맛있는 음식.   즐거운 여행을 위해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이 세가지가 전부일 것이다.  비가 가끔 내려도 5분이나 10분 후면 그치는데, 비가 그치자마자 자동차 운전이 어려울 정도로 현란하게 펼쳐지는 반원형 오리지날 무지개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럼, 이제부터 각 도시별 이야기를 풀어볼까한다.

세비야(Sevilla)

허걱~!! 왠 김치찌게에 계란후라이, 그리고 밥???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야 재미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스페인이라 해도 먹는 것은 우리 것이 최고다.  아내와 둘째 아이가 살고있는 집에 도착해서 돌아올 때까지 매일 한 상 가득씩 우리음식으로 파티를 했다.  여러분도 어딜 가시든 우리음식을 싸가지고 가시는 것을 잊지마시라.  즐거운 여행의 원동력이니께.  "베스멜라(Bessmellah)~!"  크크크..

집에서 나와 5분만 걸으면 나오는 메넨데스(Menendez) 길이 바로 사진 저쪽 앞 좌우로 난 길이다.  저 길을 건너면 세비야의 중심부인 산타 끄루스(Santa Cruz)가 이어지고 5분만 더 걸어가면 히랄다(Giralda,바람개비)탑이 있는 대성당(Catedral)과 만난다.  이것들이 바로 세비야의 길찾기 중심좌표가 된다.

집 앞의 성 베르나르도(San Bernardo) 교회 광장을 지나 큰 길로 나가는 꼬피아(Cofia)길이다.  골목은 거의 모두 일방통행이므로 차로 찾아가려면 지도를 잘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보아야 한다.  아니 아주 아프게 꽈악~ 물어보아야 한다. ^^

메르까도(Mercado).    스페인을 여행하려면 이런 단어 정도는 알고 있어야 굶어죽지 않는다.  영어로 '머천트(Merchant)'라 하면 금방 외우실랑가?   시장에 가면 온갖 맛있는 과일과 빵, 음료수, 햄 등을 아주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무거워도 충분히 사서 들고 다니며 먹어야 한다.  그런데 구입한 식료품의 육중한 무게에 비해 지불한 돈이 얼마되지 않아 묵직한 짐보따리의 무게가 아주 가볍게 느껴짐은 또 하나의 엄청난 즐거움이다.  좌우간 우리나라 시장에서 장보는 것 보다는 싸다.  그리고 많이 준다.

잊기 전에 대성당(Catedral) 꼭대기에 붙어있는 히랄다(Giralda)탑을 한번 보고 지나가자.

히랄다(Giralda)는 '바람개비'란 뜻인데, 정말로 바람이 불면 탑 꼭대기 부분이 뱅글뱅글 돌아간다.  옛 아랍인들이 살던 골목에서 방향을 잃으면 이 탑이 보이는 곳까지 나와서 다시 길을 찾아가기도 하며, 탑이 있는 방향이 어디인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길찾기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다.  이 탑의 꼭대기에는 수십개의 종들이 달려 있고 시간마다 각양각색의 음색으로 울어댄다.  물론 경사진 복도를 걸어서 34층 꼭대기까지 뱅글뱅글 돌며 올라갈 수 있는데, 꼭대기에 올라가면 세비야 시내 전체가 사방으로 한 눈에 들어온다.  그 광경은 아마도 요기 아래 쪽으로 좀 더 내려가면 보여드릴것 같다.   어유~ 지금도 머리 바로 위에서 쩔그렁 쩔그렁 울리던 종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자칫 그라나다(Granada)에 있는 알람브라(Alhambra)궁전인줄 착각하기 쉬운 사진이다.  세비야 대성당 옆에 있는 아랍인들의 성(城) 또는 요새 '알까사르(Alcazar)' 내부의 모습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어느 도시를 가든 이러한 아랍과 비잔틴의 건축물을 한 곳에서 짬뽕으로 볼 수 있는데, 바로 대표적인 곳이 까떼드랄(Catedral,대성당)과 알까사르(Alcazar)이다.  안달루시아 어느 도시에든 예외없이 이 두가지 치열한 주도권 싸움의 역사가 공존하며, 그것들을 보면 그 도시의 관광이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화려함과 정교함의 아랍 요새를 보면 비잔틴의 덩치 크고 볼품없는 간결함이 눈에 들어올리가 없다.  나름대로 화려한하다는 까떼드랄(대성당) 조차도 아랍의 사원을 개조하여 눈가리고 아웅~ 해놓았으니...  역시 안달루시아의 주인은 아랍인임이 맞는 것 같다.  천년전에 그 땅에서 700년동안 살았으면 주인 아닌가? 

까떼드랄(대성당) 안에 정말 웃지못할 유적(?)이 하나 있는데, 바로 침략자 '크리스토퍼 콜럼부스'의 관묘이다.  네명의 스페인 왕들이 어깨에 떠매고 있다.  그런데 그 아래에 서 있는 이쁜 처자는 누구신지? ^^

내가 이 글을 너무 편협한 역사관으로 쓴다고 핀잔을 주실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으나, 역시 아늑한 조경과 정교한 건축은 아랍의 것이 최고다.   "알라 훅 아끄바르(알라는 위대하다)~!!!"  히히히...

그들은 서늘한 그늘은 물론 얼음을 보관하는 창고도 만들줄 알았다. 그 당시 얼음들은 저 아름다운 천정 구조에 매혹되어 녹을 정신도 없었을것 같다. 나같아도 거기 보관될 얼음이라면 절때루 안녹을거다.

알까사르 궁전 그늘에서 올려다 본 하늘.  뾰족지붕이 업고있는 하얀 구름이 솜사탕 같다. 

그들은 벽이고 천정이고 바닥이고 가릴것 없이 어디든 가만 놔두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 모두가 온통 화려하고 정교한 문양들.   맹기는데 월매나 고생이 많았을꼬.

'황금의 탑(Torre del Oro)'.   세비야를 가로지르는 '과달끼비르(Guadalquivir)' 강 한 쪽 끝에 서있는 아랍인들의 강변 방어요새.  12개의 벽면으로 지어진 이 요새는 아랍시대 성(城)인 '알까사르(Alcazar)'의 수문장이었다고 한다. 요새 위에 볼품없이 지어진 탑은 18세기에 거시기 사람들에 의해 더해진 것인데, 정말 어울리지 않게 기술적으로 지어놨다.   강변 노을에 탑이 반사되어 황금 빛으로 빛난다고 '황금의 탑'이란 이름이 붙었다.  밤에는 노란 조명을 밝혀놓아 더욱 금빛으로 빛난다.  저 탑이 정말 금으로 만든 것이라면...  ^^

대성당 꼭대기 히랄다 탑 위에서 내려다본 과달끼비르 강 방향의 사진.   세비야가 자랑하는 '바라띠요(Baratillo)' 왕립 투우장이 보이고, 과달끼비르 강 건너편에 뱃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뜨리아나(Triana)' 지역이 보인다.

히랄다 탑에서 다른 쪽으로 내려다 본 사진.  대성당 근처 하얀색 구시가지 집들과 저 멀리 근대식 아파트형 집들이 대조를 이룬다.   역시 대성당을 중심으로 반경 5킬로미터 정도만 세비야로서 볼거리를 제공할 뿐, 나머지는 부산이나 인천 쯤의 풍광이라 생각해도 된다.

대성당 아래 쪽에서 히랄다 탑을 올려다 본 사진.  보수공사가 자주 있어 재수없으면 입장이 불가한 날도 있다.  나도 여러번 세비야를 찾았지만 알까사르와 대성당을 한꺼번에 본 적이 거의 없다. 

'뜨리아나(Triana)'에 있는 중국인 상점.   스페인을 여행하고 집에 오기 전에 꼭 들러보길 바란다.  다른 기념품 파는 곳의 절반 가격에 각종 기념품을 살 수 있다.   우리나라 어느 꼬마 아가씨가 제일 좋아하는 가게란다.

이상, 세비야 이야기 끝.  이어서 다른 도시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엘 로씨오(El Rocio)

'엘 로씨오(El Rocio)'.   세비야에서 서쪽 '웰바(Huelva)'를 향해 차로 30분 정도 달리다가 남쪽 '도냐나(Donana)'국립공원 가는 방향으로 다시 30분을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안달루시아 최고의 성모 마리아 순례지이다.  5월 마지막 주 일요일이 되면 남쪽 '까디스(Cadiz)'와 '웰바(Huelva)'를 출발한 안달루시아 각지의 순례자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마차를 동반해 고생고생 걸어서 이곳까지 온다.   비포장 도로와 늪지대의 자연생태 국립공원을 일주일간 걷고 또 걸어서 그야말로 온갖 먼지를 다 뒤집어쓰며 거지 꼴이 되어 기를 쓰고 찾아오는 그곳의 풍광이 과연 그럴만한 것인지 아래 사진을 보며 함께 판단해보자.

'로씨오(Rocio)' 대성당.   스페인에서 가장 예쁜 성모 마리아가 있는 곳이란다.   세워놓은 자동차들만 아니어도 누군가의 그림이라고 해도 믿을텐데 정말 아쉽다.   그 유명한 예쁜이 성모 마리아는 또 다른 방의 성모상.  그러니까 성당 오른쪽 부속 기도실에 수천개의 봉헌?불과 함께 있는 마리아가 내 눈에는 더 예뻐보였다.  내 눈의 수준이 워낙 그러한지라... 크크.   어쨌거나 아래 두 장의 비교 사진을 통해 함께 확인해 보건데, 본당의 마리아가 시골처녀같은 순박함이라면, 기도실 마리아는 돌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까르멘(Carmen)'스럽다고 우기고 싶다.  떽끼눔~!!!

로씨오 성당 부속 기도실에 수천개의 ?불과 함께 있는 성모상.  이 성모 마리아가 더 이쁘다. 크크 ^^

본당 제대 앞에 있는 성모상. 

'싼따 에울라리아(Santa Eularia)' 늪지의 여왕(Reina en la Marisma).

- La mas bonita de Espana. - 에스빠냐 최고의 미인이다.


헤레스 델라 프론떼라(Jerez de la frontera)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만 또 먹거리 이야기를 해본다.  왠 당근 갈은 죽에 홍어 썰어 넣은 것 같은 이 요상한 음식의 이름은 뭘까?   우리나라 항아리랑 똑같은 재료의 움푹접시에 담긴 걸쭉한 이 스프 또는 음료(?)의 이름은 '가스빠쵸(Gaspacho)'.   뜨거운 태양 아래 여름을 이기는 스페인 사람들의 보양음료이다.   맛은 거시기 뭐라고나 할까...  양파, 마늘, 레몬, 토마토, 당근즙 등등이 범벅으로 이루어내는 마구마구 창조적인 맛이다.  보통은 그냥 먹는데, 사진의 것은 특별히 주문한 날돼지고기 허벅지살로 만든 '하몽 쎄라노(Jamon Serrano)' 를 첨가한 메뉴이다.  설명을 읽으며 어욱~!! 하고 벌써부터 오심을 느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한번 먹어보고 그 맛의 고통(?)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는 여름철 스태미너 메뉴이다. 

스페인 여행을 한 어느 분이든 마드리드 아토차 역에서 출발하는 초고속열차(AVE)를 타고 2시간 조금 넘게 걸려 도착하는 '세비야(Sevilla)' 정도만 다녀와도 안달루시아를 다 봤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특히 플라멩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빼놓으면 안되는 세비야 근교의 작은 도시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헤레스 델라 프론떼라(Jerez de la frontera)'이다.  도시 이름이 너무 길고 거창하여 그냥 줄여서 '헤레스(Jerez)'라고 해도 통한다.   '세비야'가 웅장한 맛이라면, '헤레스'는 아늑하고 예쁜 맛이 있다.  서울의 종로구 정도의 크기 밖에 안되는 이 작은 도시에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만 나는 누룩 포도주인 '헤레스(Jerez, 영어로는 Sherry)'를 만드는 양조장(Bodega)만 10여개나 있고, 스페인은 물론 영국의 왕실 종마를 사육하고 훈련시키는 명마의 고장이며, 안달루시아 플라멩꼬 센터가 있는 보물같은 도시이다.  스페인 왕실승마기술학교가 있으며, 타고 달리는 것으로 유명한 도시라 그런지 세계적인 오토바이 선수권이 개최되는 곳이기도 하고,  매년 2월에 열리는 '헤레스 플라멩꼬 페스티발'에는 스페인 전역의 최고 아티스트들이 모여 보름 동안 각종 공연과 마스터클래스로 큰 잔치를 하며, 플라멩꼬 관련 영화, 비디오, 서적 등 어떤 정보든 공짜로 도와주는 '안달루시아 플라멩꼬센터(Centro Andaluz de Flamenco)'가 있다.

외곽에서 십수차례 만나는 자그마한 로터리형 교차도로의 지루함을 이겨내며 시내 한복판에 다다르면 잘 생긴 24시 지하 주차장이 있다.  물론 유료인데 하루종일 요금이 1만원이면 충분할 정도로 저렴하다.  헤레스는 한가롭게 걸어서 다녀야 제 맛이기에 저녁에 플라멩꼬 공연을 보러 갈 때까지는 타고간 차를 주차장에 잠시 맡겼다.  여기서 잠깐 스페인 여행에 필수적인 단어를 하나 더 공부하자.

'을리브레(Libre)'.  영어 Liberty(자유?)란 단어의 조상이니까 그렇게 풀이해도 된다.  '주차할 공간이 있음' 정도로 이해하면되는데 스페인 국내선 비행기 화장실 문에서도 이런 단어를 볼 수 있다.  화장실 문앞에 있는 초록글씨의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는데, 좌우간 반대말은 '오꾸빠도(Ocupado)'이며 영어의 Occupied(누군가 있음?)이다.   "꽤액~!!! 스페인어??  영어도 못하는데 왠 스페인어???" 하시는 분들은 아무 영어단어나 소리나는 그대로 촌스럽게 발음해 보시라.  그러면 발음기호도 따로 없는 스페인어가 즉시, 그것도 무쟈게 쉽게 다가온다. 여기에 그 증명자료를 하나 더 적어본다.  레스토랑(Restaunt; 식당) = '레스따우란떼(Restaurante).   아으~ 스페인어는 정말 쉽고 재미난 언어이다. ^^

스페인은 관광수입으로만 먹고사는 나라라고 이해해도 될만큼 어느 도시에 가든 손님지향적 놀이문화와 안내가 철저하다. 관광객이 어디까지 가는 길을 물으면 자신이 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동행해주는 등, 그들의 삶에 대한 애착과 투철한 직업(?)정신을 심심치 않게 경험할 수 있다.   사나운 소 수십마리를 골목을 달리도록 풀어놓고 아슬아슬 피해 다니기, 먹는 토마토를 수십 톤 널어놓고는 길바닥이 벌겋게 되도록 서로 던지고 범벅이 되어 놀기, 온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인간탑을 얼마나 높이 쌓는지 견주기, 마을 공터에 운동장만한 냄비 하나 걸어놓고 노란향료 뿌린 해물볶음밥 만들어 나눠먹기 등등... 자기들끼리 열심히 놀면 그걸 구경하러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꼬인다.  그러므로 스페인의 어느 도시를 가든 위풍당당하게 관광객으로서의 권리를 찾아야지 쭈삣쭈삣하면서 길을 헤매거나 하면 그런 사람은 좀 심한 말로 바보이다.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든 "임뽀르마씨온(Informacion; 관광안내소)?" 이라고 물어보던지해서 시내 한복판이면 반드시 있는 관광안내소를 찾아간다. 밝은 미소와 함께 콩글리쉬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예쁘고 영어 잘하고 친절한 안내아가씨로부터 그 도시의 상세지도와 함께 관광정보에 대한 자세한 설명, 그리고 그 아가씨가 자주 가는 싸고 맛있는 식당 등의 힌트를 얻는다.  

이 도시가 왜 아늑하고 예쁜 곳인지는 놀이동산의 열차처럼 생긴 버스에 올라탄 동네사람들만 봐도 금새 알 수 있다.  뭔가 빠르고 경쾌한 '불레리아(Buleria)' 리듬의 플라멩꼬 노래를 손뼉을 치며 노래하는 소리가 시끌벅적 지나가면 십중팔구는 그 동네 버스가 지나가는 것이라 생각해도 좋다.  서너명 이상만 모여서 어디를 갈라치면 애구 으른이구 할것 없이 모두들 잠시도 그냥 있지않고 손뼉치며 플라멩꼬 노래를 한다.  게다가 저 밝고 즐거워하는 표정들을 보시라.  사실은 내가 길가에서 어설픈 플라멩꼬 무용 동작을 하며 혼자 놀고 있는데 그 앞을 지나가는 버스에 탄 동네 분들이 노래부르고 가다가 우리 일행과 손짓으로 인사를 나누며 더욱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웃어주세요~!!!" 라고 연출해서 찍은 사진 아니냐고 어느 분이 우기시면 할 말 없어지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무뚝뚝하고 삭막한 버스의 분위기와는 다소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나는 스페인 여행정보를 묻는 분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유럽을 여행했는데 스페인을 빼먹었다면 안타깝고, 스페인을 여행했는데 안달루시아를 가보지 않았다면 불쌍하며, 안달루시아를 여행하면서 헤레스를 그냥 지나가면 처참하다~!!"

맑은 공기, 걸어다니는 재미를 주는 아담한 도시 사이즈, 멋진 조경과 어우러진 거리, 즐겁게 놀아주는 동네사람들, 싸고 맛있는 음식, 플라멩꼬는 물론, 그윽한 포도 익는 냄새가 있는 예쁜 도시이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즉시 서양장기 '체스(Chess)'의 말이 되어 한판씩 놀 수 있도록 보도블럭까지도 예술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방 어느 곳을 둘러봐도 빠지지않고 시야에 들어오는 크고작은 교회들의 십자가들일것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빨간색으로 통일된 네온싸인으로 불을 밝혀 도심의 야경은 그야말로 붉은 십자가의 물결이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교회보다는 훨씬 적지만 카톨릭을 국교로 하고 있는 스페인 역시 곳곳에 교회들이 있고 보일락말락한 십자가를 머리에 이고있는 건물 꼭대기 종탑으로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헤레스 시내 도로 한복판에서 만난 십자가 조형은 우아하면서도 무엇인가 이야기를 담고있어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표정과 그 아래 성모 마리아의 표정을 읽으려 시선을 멈추었고, 그 앞쪽에 십자가의 길을 따라 고행으로 수행하는 수도자들의 가면 속 표정을 상상해보게 한다.  나도 처음에는 스페인 카톨릭 의식 행렬에서 흔히 볼수 있는 뾰족한 모자가면을 쓴 인물들이 도대체 뭐하는 분들인가 궁금했었는데, '뻬니뗀떼스(Penitentes; 참회 또는 속죄하는 자, 고행자 )'라고 가까이 사는 분이 알려주셨다.

'싼 살바도르(San Salvador)' 대성당(Catedral).   아랍인들을 쫓아내고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성당  바로 뒤 명당자리에 버티고 있는 '알까사르(Alcazar; 아랍요새 또는 사원)'의 황홀한 기운을 눌러보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의 관심은 대성당 보다는 알까사르에 집중되어 있다.   합리적이면서도 정교한 건축의 알까사르 문양에 쏠리는 관심은 둘째치고라도 건물 꼭대기에는 천재 과학자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만들었다는 '까마라 오스꾸라(Camara Oscura; 망원경)'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라 보여드릴 수 없어 참 안타까운데, 갈릴레오의 망원경은 상상했던것 보다 열 배쯤 큰 대형 천체망원경과 빔프로젝터의 개념을 그대로 반영하여 헤레스 시내 전체를 꼼꼼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한번 찾아가보시라.  어쨌거나 여러가지 이유에서 대성당 보다는 오히려 아름다운 아랍식 정원과 화려한 문양이 있는 알까사르가 재미있고 아늑하다.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까지는 임금님 대궐 문앞에 '싼 살바도르(San Salvador)'대성당 비스무리하게 생긴 건물이 하나 있었고, 영문도 모른체 '중앙청(?)'이라고 불렀던 점을 반드시 기억하지 말자. ^^

'씨에스타(Siesta; 낮잠)'??   스페인은 물론 포루투갈, 그리스 등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오후 1시 경부터 4시 정도까지 낮잠을 잔다.  은행도 경찰서도 관공서도 모두모두 잠을 잔다.  그 시간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내가 아는 세비야의 어느 플라멩꼬 유학생 처녀는 중국산 우산을 양산삼아 들고 그 시간에 걸어가는데,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안의 사람들이 전부 쳐다보고 가길래 주위를 둘러보니 그 넓은 거리에 걷고있는 사람이 자기 밖에 없어서 멋적은 웃음만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해가 중천에 떠서 온도가 섭씨 45도를 넘어가고 가로수 그늘 바로 아래에 그림자가 수직으로 꽂히는 최고조의 시간에도 칙칙한 습기가 없는 지중해성 기후인지라 나무 아래나 건물 처마 밑, 좌우간 어디든 그늘 아래에만 들어가면 시원하다.   "덥긴 뭐가 더워?"  볼 것 많아 시간에 쫓기는 관광객들은 썬글라스에 썬크림을 의지하여 여기저기 다녀보지만 관광지 역시 잠을 자는건 마찬가지이다.   더위도 더위나름이지 그렇게 기분좋은 더위는 지중해성 기후의 더위를 경험해본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말로는 정확한 설명이 불가능한 좀 거시기한 더위이다.  관광셔틀버스가 지나가는 야자수 위로 펼쳐진 그림같은 하늘빛과 솜사탕 구름을 보면 조금 이해가 될랑가 모르겠다.   3시간에서 4시간의 낮잠을 잔 사람들은 오후 5시쯤이면 다시 일을 시작하고, 퇴근 후 저녁 9시쯤부터는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엄청난 수다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보통은 새벽 1시까지, 길게는 새벽 3시 정도까지 즐긴다.

아주 조심스럽게 치장하기를 좋아하는 헤레스는 길 안내표지판도 핑크색이다.  맨 아래 노란색 표지판이 바로 information 의 i 라는 이니셜과 함께 관광안내소의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그리고 길 한복판에 통행을 방해하며 쌓여있는 예쁜 오크통들은 여기가 헤레스라는 뜻이다.  스페인 사람들에게도 '와인(Wine)'이라는 뜻의 '비노(Vino)'라는 단어가 따로 있는데, 헤레스에서 생산되어 전세계로 팔려나가는 그들만의 '누룩 포도주(내가 붙인 이름)'는 '헤레스(Jerez)'라고 부르짖으며 고집스럽게 구분을 짖는다.  우리나라 홍도에서 나는 술을 '홍주'라고 하듯, 그들도 그렇게 부르고 실제로 발효방법과 맛의 차이가 확실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헤레스'라는 발음이 어찌 외국으로 잘못 전해져서 영어권의 사람들은 '쉐리(Sherry)'라고 부르는 달짝지근한 포도주이다.    스페인에도 '리오하(Rioja)'라고 하는 유럽식 와인의 명산지가 있는데, 헤레스는 와인과 확실히 구분되는 포도주라는 것을 스페인 사람들은 발음할 때도 힘주어 강조한다.  식당에서 '헤레스(Jerez)'를 주문할 때는 반드시 '헤'를 약하게 발음하고 '레'에 강세를 준 다음, 그 뒤에 '스' 발음은 '뜨'를 발음하는 것 처럼 강하게 끊어서 발음해야 서로 알아 듣는 척 해준다. ^^

스페인 사람들은 바람개비를 좋아하나보다.  여기서도 또 바람개비를 만난다.

이름하야 스페인을 대표하는 양조장인 '곤살레스 비야스(Gonzales Byass)'의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상표이자 상징인 '띠오뻬뻬(Tio Pepe; '뻬뻬삼촌'이란 뜻)'이다.  스페인 전통 중절모자에 빨간색 웃도리차림으로 기타(guitar)를 옆에 끼고 있는 포도주 병의 형상이 인상적이다.   '보데가(Bodega)'라고 하면 스페인어로 '양조장'인데, 특히 헤레스에서만 생산되는 누룩 포도주 '헤레스(Jerez)'를 만드는 곳의 통칭이며, 역사적으로는 저녁만 되면 플라멩꼬 공연이 열리는 '음주가무' 매니아들의 본부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아직까지도 규모가 작은 '보데가(Bodega)'들은 플라멩꼬 공연장을 겸하고 있다.

관광객들을 위해 시간대 별로 다국적 언어 통역직원이 동승하는 전동열차가 운행될 정도로 양조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규모와 함께, 그 역사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놓고 자랑하는 그들의 자부심에 기가 죽을 지경이다.  막말로 술공장 견학에 1인당 1만원 가까운 입장료를 내고 포도 익는 달짝지근한 냄새에 취해서 정신없이 구경하고 막판에는 시음도 하고, 나오다가 알딸딸~하게 싸악 기분좋아진 틈을 놓칠새라 부모님께 드릴 귀국 선물로 포도주 몇 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직판장까지 견학코스 종점에 구비해 놓았다.  잘나가는 상점에서는 손님이 '봉'이다.

헤레스가 와인과 구분되는 특징이란 다름아닌 숙성방법에 차이인데, 정제된 포도원액을 병에 담아 밀폐된 상태로 숙성시키는 것이 와인(Wine)이라면, 헤레스(Jerez)는 오크통에 원액을 담아 유기호흡을 통해 누룩이 생기도록 발효를 한다는데 특징이 있다.   오래 전부터 이 원액들이 영국으로 수출되어 유명 위스키 블랜딩의 원료가 되었다고 한다.  오크통 한 쪽이 투명 유리로 된 이것은 '보데가(Bodega; 양조장)' '곤살레스 비야스(Gonzales Byass)'를 찾는 관광객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오크통 내부에 생기는 누룩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포도주를 우리말로 '누룩포도주' 또는 '포도막걸리'라고 부르고 싶다.

누룩이든 된장이든 오래 잘 익혀야 맛있는 것은 불변의 법칙.  헤레스도 예외는 아닌 듯 통에 담아 한 줄 쌓고, 그 위에 또 한 줄 쌓고, 또 쌓고...  맨 아래 통부터 따르고 정제하여 병에 담아 헤레스를 만드는데, 최고로 오래된 것이 30년이고 병 레이블에 '노에(Noe)'라고 이름이 붙어있는 것이다.   안달루시아의 건조한 그늘 아래 적당한 통풍과 습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보관창고는 밟으며 지나가는 바닥조차도 감촉이 좋다.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인 만큼 전세계 어디에서든 헤레스를 구할 수 있다고 그 위세를 자랑이나 하는 듯 수출하는 각국의 국기를 통에 붙여서 전시해둔 곳도 있다.   2층 왼쪽 첫번째 국기는 태극문양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술이라면 둘째 가기 서러워 하는 우리나라 국기인것 같다. ^^    실제로 우리나라의 수입 대리점에 연락해 보았는데, 사장님께서 달짝지근한 것을 싫어하신다는 개인적 취향 때문에 헤레스는 일체 수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이 회사에서 곁다리로 만들어내는' 비노(Vino; 와인)'만 소량 수입해서 연명하시는 듯...

오크통을 쌓아놓은 저장창고를 지나다 보면 딱 한군데 더불어 사는 서생원을 위해 한 잔 나누는 장소가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난리를 낼 일이지만, 그들의 생각은 서로 노려보며 잘 나누지 못하는 우리들의 생각과는 좀 다른가보다.    전통적으로 절반 이상 따르면 안된다는 잘 생긴 헤레스 전용 잔에 사다리까지 매달아서 올라가 드실 수 있게 해 놓았고, 그 옆에 반쯤 말린 대구포 안주까지 마련해 놓았다.  오크통은 건들지 마시고 양껏 드시되, 음주보행은 삼가하시라는 주인장의 높은 뜻이 감격스럽다.   이 사진은 몇 년 전 아내가 헤레스 플라멩꼬 페스티발에 참가하여 이 공장에 견학차 들렀다가 어렵사리 찍은 것인데, 이런 모습을 만나기가 절때루 쉽지않다나 뭐라나.  자세히 보니까 서생원의 얼굴 표정까지 읽을 수 있는 참으로 절묘한 장면이다. ㅋㅋ

이 공장을 방문하는 세계 각국의 국가원수는 물론, 저명인사들의 낙서를 보여주며 자랑을 한다.  팝송대표 비틀즈,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처칠 영국수상, 화가 피카소, 플라멩꼬 기타리스트 빠코 데 루씨아 등등 시간만 있으면 그 유명인사들과 한 자리에 서 있었음에 즐거워할텐데 보여줄 것이 많은 안내직원의 발걸음을 따라가려니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휘익~ 지나가기도 바쁘다.

아주 오래된 오크통에 그려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황소 두마리가 끄는 마차의 바퀴가 빠져 달아나고, 쏟아져내리는 오크통을 줏어담으려고 한 사내가 달라붙는 모습을 그 옆에 말달리는 뒷자리에 탄 아낙네가 어이없이 바라보는 그림이다.  도처에서 이런 종류의 그림들을 만날수 있는 이곳이 유명한 갤러리급 술공장이란 점이 참 재미있다. 

북치는 총각들?  플라멩꼬 공연 보러 으스름한 저녁에 서성거리다가 동네 공터에서 시끌벅적한 장면을 보았다.  다름아닌 나팔 종류로만 구성된 이 동네 마칭밴드의 고수들인데, 동네 청년들로만 구성된 악대가 낮잠을 푹 자고 저녁마다 모여서 한 시간쯤 연습을 하고, 그 밴드의 타악기 담당자들이다.  속칭 쓰레빠 질질 끌고 편한 복장으로 모여 부담없이 연주를 즐긴다.

악기편성은 트럼펫 처럼 생긴 족속들이 모두 모여있고, 찢어지는 소리를 한데 모아 처절하게 부르짖는다.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았더니 끝난지 두 달밖에 안되는 4월 '쎄마나 싼타(Semana Santa; 성주간)'를 준비하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정확히 준비라는 개념은 없고 그냥 그들의 생활 또는 습관이라고 해야 맞을것 같았다.  선선해지면 악기 하나씩 들고 모이는 동네 총각들의 연습장면을 그들의 여자친구 쯤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아가씨들이 마을 공터 언저리에서 훔쳐보는 모습이 인상에 남는다.

동그랗게 서서 연습하다가 쉬는 시간에 잔소리하는 밴드마스터의 목소리에는 귀를 절대로 기울이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전화도 걸고, 먼산을 바라보며 딴청을 하는데, 그래도 밴드마스터는 굳세게 자기가 할 말을 끝까지 다 해버린다.  세월아 네월아 다섯월아...  내일이면 습관처럼 또 모여서 이러구 있을텐데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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