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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 기사는 '라 까냐(La Caña)' 라는 잡지 1992년 6월호에 게재되었던 내용 중, 플라멩꼬 기타리스트 '빠코 데 루시아(Paco de Lucia)' 인터뷰 기사를 발췌하여 번역했습니다. 더불어 그간 제가 인터넷으로 모은 그의 많은 사진들 중에 몇 가지를 골라서 글과 함께 게재합니다. 아주 어린시절의 사진을 포함한 그의 결혼식 사진, 연주활동에 이르기까지의 사진을 골고루 담아 보았습니다. 빠코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아주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 번역 : 이은호 / 아람클래식기타 (02) 745-6117

* 대부분의 플라멩꼬 연주자들은 손과 입을 통해 전수되는 플라멩꼬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약력이나 일대기를 다룬 기록이 없다. '빠코 데 루시아(Paco de Lucia)'는 여섯 살 때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기타는 그의 아버지와의 깊은 대화를 이어주는 커다란 통로였다.

*"저는 모든 것을 아버지로부터 얻었습니다. 장차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는 그런 어린 나이의 제게 아버지는 기타연주를 배우도록 했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다른 것 말고 기타연주를 권했던 이유는 가난한 집안사정으로 저를 학교에 보낼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저는 (어릴 적부터) 직업을 가지고 집안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때문에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나요?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세련되지 못한 화술, 지식의 부족 등으로 곤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출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그런 생각이 수줍음이나 두려움, 열등의식을 갖게 합니다.

굶주림이 예술활동에 있어 자극제가 될까요?

배고픔은 언제나 완숙한 예술적 경지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자극제라는 것을 저는 체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고 떠벌이곤 하지만 저는 반대로 그들이 굶주림이라는 자극을 통해 성공으로 이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배부른 사람은 굶주린 사람보다 덜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 빠코 데 루시아의 첫 번째 미국방문은 그가 열 세 살되던 해에 "호세 그레꼬 스페인 무용단"의 기타 주자로서 였다. 그 당시 그는 무대 위에서 기타 연주를 하기 보다는 다른 연주자들, 특히 그의 아버지와 절친한 친구이자 당대 최고의 기타 주자였던 '니뇨 리까르도'의 연주를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미국에서 그는 '사비까스'와 '마리오 에스꾸데로'로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연주방식 체득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의 연주방식은 특출했고,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연주방식은 개인의 인격' 이라고 그는 말한다. 쉬운 것을 어렵게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려운 것을 쉽게 표현해 내는 사람이 있듯이...

당신의 상상력이 일반적 상식을 벗어난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반적 상식은 지적 능력에 따른 제한적 개념이지만 상상력은 무한할 수 있으며, 가끔 저의 상상력은 일반적 상식을 위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기교나 수학적으로 이유를 따져 들어가는 음악공부를 하지 못한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의식이나 법칙에 대한 무시는 자신을 더욱 높은 경지로 이끌어주기도 하며, 최소한 자신이 도약해야 할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을 가려내주기도 합니다.

'사비까스'는 미국이 스페인보다 플라멩꼬에 대한 열정이 강하다고 했다는데...

예, 사실입니다. 미국은 음악교육의 수준이 높고, 많은 젊은이들이 플라멩꼬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플라멩꼬는 스페인의 것이고, 스페인 사람이 그것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 창조력이 반론으로부터 생기는 힘이라면 - 새로운 예술의 형식은 기존의 틀에 대한 반박으로 생겨왔듯이 - 고정관념으로부터의 이탈은 젊은이들이 가져야할 탄력성이며, 용맹과 대담함은 구습에 대한 반발로 표현될 수 있다. 빠코는 사비까스의 애정 어린 가르침을 받은지 21년이 지난 후에 뉴욕에서 열린 '사비까스 기념회'에서 연주를 했으며, 당시 사비까스는 기자회견에서 특유의 비꼬는 말투로 빠코의 연주는 보잘 것 없다고 했다. 하지만 빠코는 그 기사에 대해 화내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나에 대해 혹평을 하는 동안 그를 위해 연주를 해야 했다. 사비까스는 자신의 음악이 너무 전통적인 것만 고집하는 구식의 것이 되어버렸음을 깨닫고도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 아마도 사비까스는 자신의 연주가 아무리 놀랍고도 천재적이며 구성이 잘되어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선조들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그 안에 안주하려하는 것은 낙오자가 되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것은 인류의 시계를 거의 멈추게 하는 일일 것이다. 사비까스는 1990년 세상을 떠났고, 빠코는 "우정은 오직 느낄 수 있는 것일 뿐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최근 음반인 '시리얍(zyryab)'에 사비까스에 바치는 '따란따(taranta)'연주를 실었다.

플라멩꼬는 짚시들의 전유물인가요?

짚시들은 플라멩꼬에 50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다고 말합니다. 그밖에도 플라멩꼬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체득한 예술적 능력, 표현 및 기질 등의 모든 것이 플라멩꼬에 적합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짚시가 아니면 플라멩꼬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고, '안또니오 챠꼰'이나 '엘 니뇨 리카르도' 등의 연주가들 처럼 짚시와 함께 자라고 그들을 자주 접해 본 사람이 대체로 플라멩꼬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플라멩꼬는 어느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며, 후천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플라멩꼬 음악이란 바로 그런 것이지요.

독단주의가 플라멩꼬 보급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대체로 플라멩꼬 연주자들은 독단적이지만 그런 것이 플라멩꼬 보급에 방해가 된다 하더라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자신들이 바라는 데로만 노래하고 연주하길 강요하는 순수주의자들과는 생각이 다릅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플라멩꼬의 틀에 비추어 다른 연주자들의 것을 평가하며 점차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플라멩꼬의 전통적인 바탕 위에서 대중화나 보급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전통을 중시하는 것과 그것을 대중화하려는 것이 적절한 균형을 가져야 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 플라멩꼬를 전통주의와 현대음악이 잘 어울리게 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한 손에 전통을 쥐고, 다른 손으로 그것을 긁어내면 방법이 보입니다. 전통을 잘 이해하는 이유는, 그 안에 본질, 메시지, 기본사항 등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전통적인 것을 이해하고나면, 그것을 토대로 당신은 어디든 갈 수 있고, 그 뿌리를 지키고 있으면, 사실상 플라멩꼬의 특성과 향기, 맛 등은 그대로 유지하며 새로운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입니다.

* 14살 때 빠코는 Jerez de la Frontera의 플라멩코 대회에서 우승했다. D. E. Phoren은 "그는 이번 대회의 출전자들 중에서 단연 뛰어났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빠코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이 비평가이기 때문에 비평가란 필요 없습니다. 만일 당신은 연주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호평을 받았다든지 혹은 그 반대의 경우라면, 그 비평을 무시하십시요. 아주 드물게 비평이 부정적일지라도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내가 17살 때 뉴욕 타임즈는 저에 대해 혹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진실된 평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그들은 매우 시적이며 아름다운 글로 나의 연주에 대한 호평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잘 써주곤 합니다. 일본의 비평가들은 신중하면서도 직설적이며 분석적인 편입니다."

유럽 문화에 있어 플라멩꼬의 위상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플라멩꼬는 유럽뿐만 아니라 스페인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화적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스페인 사람들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플라멩꼬는 분명히 스페인을 대표하는 문화입니다. 실제로 플라멩꼬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것이며, 바스끄, 갈리시아, 까딸루냐 지방 등에서는 플라멩꼬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안달루시아 지방 외의 사람들이 플라멩꼬가 스페인의 전부인 것 처럼 알려지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안달루시아는 스페인 주요지방의 하나입니다. 플라멩꼬는 다른 유럽민속음악에서 거의 느낄 수 없는 감정과 리듬, 온화하고 서정적인 힘을 가진 위대한 음악입니다.

'프란시스꼬 산체스(본명)'와 '빠코 데 루시아'는 같은 사람이지요?

'빠코 데 루시아'는 무대 위의 연주가로 있을 때의 이름이고, 저의 본명은 '프란시스꼬 산체스'입니다. '빠코 데 루시아'는 가면과 갖가지 치장들로 가리워진 인격이며, 순수한 음악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대 밖에서도, TV에 출연할 때나 인터뷰를 할 때도 '빠코 데 루시아'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멋진 미소를 지어야 합니다. 제가 걸어온 행적과 살아 온 환경 때문에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가능한 한 '프란시스코 산체스'로서 살아가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애쓰고 있습니다.

청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인기를 얻는 길이라 생각하시나요?

예술가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진리임을 규명하고 공감하며, 이해되어지길 바랍니다. 어느 정도로 청중을 현혹시켜야 인기를 얻는다는 것에 대해 확신은 가질 수는 없습니다만... 그런 세뇌행위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청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인기를 얻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인기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습니까?

매우 두렵습니다. 그것이 저의 허영심 때문이든, 사랑받는 연주가로서 남아있길 원하는 것이든, 아니면 두가지 다 이유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떤사람의 해야할 행위에 대한 대가(代價)로서의 돈이 당신에게도 연주의 대가로서의 척도가 되었는지요?

정해진 규범 속의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게임과 같은 것이며,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얻는 대가는 그런 게임에서의 승패를 좌우하는 척도가 됩니다. 예술기획자들이 생각하는 대가와는 개념이 좀 다르겠지만, 예술가 자신에게 있어서의 대가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신감을 주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돈에만 눈이 어두워서 필요 이상의 대가를 원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함정에 빠져들 우려가 있으니 대가를 스스로 측정하여 정하는 올바른 안목도 필요 합니다.

* 1972년, 그는 "파코 데 루시아의 혼(魂)"을, 1년후에는 "Puende y Cadual"이라는 두 장의 음반을 냈으며, 1975년, 그의 연주는 이미 아름다움과 심오함의 두가지 장점을 고루 갖추게 되었다. 그는 마드리드 국립극장에서 많은 청중들을 위해 연주했다.

당신은 Rock음악 팬들에게 플라멩꼬를 좀 더 근접시켰나요?

예, 많은 젊은이들이 저의 연주회에 오고 있습니다. 플라멩꼬는 뛰어난 음악이며, 플라멩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이유로 - 기타 테크닉, 리듬, 호기심 등등 - 저의 연주회에 옵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저는 플라멩꼬 세계에서만 유명하게 되어 있을뿐, 일반 대중들에게는 아직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퓨전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퓨전음악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어요. 잘 모르겠지만, 제가 '레리 꼬리엘'이나 '존 맥러플린', '알 디메올라' 등과 함께 연주를 했을 때도 그 음악은 플라멩꼬도, 재즈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연주가들 간의 융화(퓨전)이었지, 음악의 퓨전은 아니었죠.

음악에 대한 당신의 정의는 어떤 것인가요?

저는 정식교육을 받은 연주가가 아니기 때문에 음악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저는 음악을 하고있고, 직관적 감각을 통해 음악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 빠코는 라틴음악의 리듬을 플라멩꼬에 접목하였다. 클래식에 있어서는 '파야(Manuel de Falla)'의 작품과 매우 독특한 연주법으로 '아랑훼즈 협주곡'을 연주했다. "스페인음악의 표현은 리듬과 멜로디가 그 중심에 있다. 나는 그 협주곡을 마치 악보에 씌어진 것처럼 정확하게 연주하였고, 나는 여지껏 그 곡이 리듬감 있게 연주되는 것을 듣지 못했으며, 그 점이 내가 공헌하고자 하는 바인 것이다." 이러한 그의 감성이 발휘되어 나온 작품이 바로 그의 19개의 음반이다. 이 19개의 음반들은 어느 것을 들어 보아도 그의 고통과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그 안에 새로운 것이 없이는 결코 음반은 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음반을 들으면 언제나 같은 느낌을 받는다 ; 그래서 나는 음반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그것들을 집에서 들어보지 않을 것이다."

* 완벽주의는 분명 그의 두터운 갑옷에 난 흠집이며, 비범한 재질은 그의 엄청난 고통의 산물이다. 그는 언제나 배움에 대해 목말라 한다. 그가 아직도 겪고 있는 십이지장 궤양에 걸렸을 때만이 1989년에 잠시 그의 갈증을 멈추게 하였을 뿐이다. 이것이 그의 직업의 본질적 부분이다. "그것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당신이 올라타지 앉으면, 기차는 그냥 떠나가 버리고, 당신은 그냥 거기 남아있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진보를 해나가면서, 그는 그의 우울함을 표현으로 바꾸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나는 그것에 익숙해 졌고, 그것과 더불어 사는 법도 알게 되었다."는 그의 한마디가 모든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는 이 멋진 세상은 자살할 만한 곳은 아니며, 자살하는 것이 다소 조롱거리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그러한 유일하게 가능한 결과를 택했다. 기타를 연주한다는 것, 특히 플라멩꼬기타를 연주한다는 것은 중노동과 같다. 그의 일은 중노동이다.

당신은 뮤즈(음악의 여신)를 추종하며, 그녀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십니까?

뮤즈는 그녀가 원하는 때 언제든 온다고 믿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당신이 열심히 할 때에 찾아오죠. 당신이 어떤 영감을 받아서 그것이 더욱 발전되어 가더라도, 당신은 매일 기타를 연습하며 무엇이든 생각나는 것을 종이에 휘갈겨 써야 합니다. 저는 언제든 끄적거리며 종이에 휘갈겨 씁니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넘어서게 되고, 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게 되면, 그것을 토대로 화려한 악절이나 아이디어를 개발해 내려 노력하게 되죠.

예술가는 작업하는 동안만 예술가일까요?

사람은 그가 뭘하고 살든지 기본적으로 모두 똑같습니다. 자전거 선수도 예술가일 수 있고, 플라멩꼬 가수도 운동선수의 정신을 가질 수 있죠.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모두는 공통적인 감성, 웃음, 울음, 슬픔 등을 가지며, 그것은 단지 우리들 각자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직업 = 예술가" 라는 식의 분류를 믿지 않습니다. 저는 분류표를 싫어합니다. 기타를 연주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아무런 타이틀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할 때 저는 일꾼일 뿐이기 때문이죠. 예술이란 모든 인간에게 선천적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어떤 식으로든지 예술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노래, 그림, 연주, 글 등이 없이도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처럼 연습하고 있지만 그들은 결코 예술가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술가가 되려는 사람들 외의 사람들도 예술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테크닉이 없다 하더라도, 왜 그것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지를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소리를 지를 수 있으며 천재적인 감성과 재능으로서 갑자기 뭔가를 내놓을 수 있는 플라멩꼬 가수가 될 수 있습니다. 투우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라파엘 파울라'나 '꾸로 로메로' 같은 투우사들이 가진 정교한 테크닉이 없더라도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그는 또한 대중 속에 있는 표현의 욕구가 선천적이고 치유될 수 없는 것이라면 용서받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숨겨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망망대해에서 여섯 줄이 달린 기타만을 끌어안고 있음으로써 그가 살아남았다고 느낄것이며, 그가 자신의 최근 음반에 대해 말할 때 처럼 항상 '마지막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때문에'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자신을 이겨낼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그는 불면증은 없지만, 최근 그는 '잠이 나의 음악을 향한 집념을 지워 버리기 때문에' 잠을 적게 잔다고 한다.

* 그는 결코 1인자가 되려고 애쓰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려고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의 길을 마냥 걸어왔으며 고급 자동차가 그 옆을 지나가도 얻어 타지 않았다고 한다. "시간은 당신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쇠약해지고, 상상력은 초라해지고, 무엇보다도 의욕이 없어진다. 이제 나는 단지 나의 명성을 유지해나가기 위해서 연주할 뿐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한 사람의 초상이다. 혹은 Cocteau가 쓴 것처럼 나는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왜냐하면 시인, 미술가, 혹은 투우사들은 다 같은 '대중'이라는 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빠코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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